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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단행본

왓 이즈 섹스?

▪ 지은이: 알렌카 주판치치

▪ 옮긴이: 김남이

▪ 판형/쪽수: 국판 변형 / 295쪽

▪ 발행일: 2021년 8월 2일

▪ ISBN 978-89-91729-42-1 93160

▪ 책값: 22,000원

 

▢ 기획 취지

현재 성과 젠더에 대한 연구는 여성학, 사회학, 정치학 등의 제한된 학제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성은 인간의 궁극적 지평을 가리키는 사실상 철학적인 주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현존하는 존재들의 인정이나 권리의 문제로만 다뤄질 수 없는 개념이다.

정신분석과 철학 관련 저작을 주로 작업해온 알렌카 주판치치는 <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에서 성을 인간 사유의 근본에 내재된 교착이자 모순으로서 드러내고 이 모순을 드러낼 때 가능한 성정치를 보이고자 했다.

성과 성차 개념이 단순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방식이 아닌, 정치나 사회에 대한 사유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철학 안에서 논구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정치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철학은 성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다룬 적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철학이 또한 얼마나 성을 (인간에 대한 이해에) 부차적인 것/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 남성적 담론과 궤를 같이 해왔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본격적인 (그러한 것이 있다면) 성철학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철학의 영역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위한 재료들이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소개

주판치치는 왜 우리가 성에 관해 말할 때면 당황스러워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중립적’인 것으로 추상적 혹은 과학적 수준에서 개념화하거나 하는 등, 일련의 성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피하려는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녀는 이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뿐 만아니라 학문적으로 영위하는 담론의 한계를 드러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유니콘은 우리가 경험적으로는 절대 볼 수 없지만 그게 어딘가에 있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성은 우리가 경험 속에서 항상 알아볼 수 있지만, 도대체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아이러니 자체인 것이다.

주판치치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성을 둘러싼 담론이 자신의 한계를 성에 갖고 있지만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는 불가능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불가능성을 정신분석적 용어로 하자면 실재의 비-존재적 성격에서 발견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현재의 젠더이론, 성이론이 지닌 한계를 지적한다. 예를 들면 버틀러의 성에 관한 논의가, 그 자체 성을 불가능성으로 사유하지 못한 채 수행성이라는 일종의 담론적-의미론적 행위 체계에 흡수시켰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녀가 보기에 버틀러의 성 이론은 탈성화되어 비로소 인식가능한 대상을 다루는 관념인 것이다.

책 전체에서는 철학자들이 다루었던 기존의 성에 ‘관한’ (우회적) 이론들이 하나씩 비판적 관점에서 조망되고, 그러면서 버틀러뿐만 아니라, 마르크스, 바디우, 애덤 스미스 등을 거쳐서 라캉의 실재 개념과 죽음충동에 이르는 그녀의 이론적 궤적은 성을 다른 방식, 오히려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주판치치는 이 책에서 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무수한 이론들과 그것이 근거하고 있는 원리들을 밝히고, 묻고,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핵심은 동시대 ‘성이론들’의 비판에 있지 않다. 그녀는 성을 존재론적으로 논하는 것을 넘어서, 존재론의 바로 그 핵심에 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통해 정신분석과 철학을 (다시) 만나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대 철학이 제쳐두었던, 어쩌면 고답적으로 보이는 철학적 개념들, 말하자면 주체, 대상, 재현, 진리, 실재 등의 개념들을 정신분석을 통해 다시 읽고 다시 쓰는 작업을 행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분명 철학책이다.

이 책을 꼼꼼히 읽는다면 아래의 질문들에 답을 얻을 수도 있다.

1. 다양한 젠더/성들에 대한 주장과 두 개의 성에 대한 주장은 양립불가능한가? 동시대 페미니즘 이론, 퀴어 이론과 젠더 이론에 정신분석이 미친 영향들이 상당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동일한 라캉이 후기에 가서도 성 구분 공식이나 “성적 관계는 없다”는 주장을 끈질기게 고수했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2. 성/젠더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장애 등이 정체성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기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다양한 차이들 중 하나로서 성차를 사유해야 하는가? 혹은, 성차는 다른 차이들과는 다른, 보다 근본적인 차이인가?

3. 성과 섹슈얼리티는 물질적인 것인가, 담론적인 것인가? 이 둘 만이 가능한 선택지인가? 아니면, 그 사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것인가, 둘 중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가?

어느 하나 만만한 질문들이 아니지만, 오늘날의 페미니즘이 맞닥뜨리고 긴급하게 답해야 할 질문들이기도 하다. 주판치치는 이러한 문제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페미니즘이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겨냥하고 있는 바가 페미니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이 책은 처음부터 존재론에 관한 것이며, 더 정확히는 최근에 부상하는 실재론과 존재론들의 복귀를 비판적으로 읽는 시도에서 출발한다(사실 이 책 분량의 절반 이상이 동시대 ‘유행’하는 존재론들과의 대결이다). 주판치치는 부상하는 존재론들(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 존재론, 신유물론 등)이 ‘담론에 오염되지 않은 것’으로서의 실재, 물질, 객체들을 철학적 개념으로 다시 들여온다는 측면에서 환영하면서도, 이 이론들이 중심적으로 논의하는 대상들이 (라캉적 의미에서) 다소 상상적일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인 성의 정치적이고 역설적인 측면을 오히려 사상시킴으로써 탈정치화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함께 표한다. 여하간에 독자로서는 주판치치를 통해 최근 쏟아지는 존재론들에 대한 대강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또 그것들이 성을 어떤 방식으로 논의하(지 않)는 지도 함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의 목차

 

1장. 여기서 점점 이상해진다...

성이라고 말했나요?

어른들은 어디서 왔는가

기독교와 다형도착

 

2장. 저 밖에는 훨씬 더 이상한 것이...

관계의 곤경

안티 섹수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일/수음’”

 

3장. 물질화되는 모순

섹스냐 젠더냐?

성적 분화, 존재론의 문제

Je te m'athème...moi non plus

 

4장. 객체-탈지향 존재론

정신분석의 실재론

인간, 동물

죽음충동 I: 프로이트

경험 밖의 외상

죽음충동 II: 라캉과 들뢰즈

존재, 사건, 그리고 그것의 결과들: 라캉과 바디우

 

결론: 아담의 배꼽에서 꿈의 배꼽으로

 

▢ 지은이 소개

알렌카 주판치치(Alenka Zupančič)

슬로베니아 정신분석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알렌카 주판치치는 European Graduate School에서 가르치며, Slovenian Academy of Sciences and Arts의 철학 연구소 소속이다. 『정오의 그림자』(The Shortest Shadow: Nietzsche’s Philosophy of the Two)와 『그 안에 있는 이상한 것: 희극에 관하여』(The Odd One In: On Comedy)를 저술했다.

 

▢ 옮긴이 소개

김남이

서울대 미학과 박사 수료. 현재 서울대, 한림대 등에서 강의하고, 페미니즘과 미학에 관해 연구하고 글을 쓴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세미나에서 성과 섹슈얼리티에 관해 선배, 동료들과 책을 읽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