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여/성이론 통권 44호

 

저자: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출판사: 도서출판 여이연 

발행일: 2021년 8월 15일

판형/쪽수: 신국판 / 270쪽

ISSN: 1228-8365

▪ 책값: 15,000원

 

 

자본주의 체제 변환과 젠더

 

 

주요내용

이번 호의 특집 주제는 자본주의 체제 변환과 젠더이다. 고정갑희는 「성종계급 모순과 페미니즘: 상품생산-임금노동 중심의 자본주의-가부장체제적 경제의 전환」에서 지금의 ‘문제적 자본주의’는 성종계급의 모순으로 유지되며 자본주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가부장체제의 위기로 재정의하고, 자본주의-가부장체적 경제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비생산/비노동/비가치, 인간생산, 가사생산, 동물생산, 자연화된 노동 등 기존 자본주의 범주에서 비가시화된 노동과 생산을 톺아보고, 그 과정에서 언어와 인식이 바뀌어야 함을 주장한다.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고정갑희는 자본-인간-남성이성애 중심의 경제를 바꾸고 성종계급 모순을 해소하는 실천으로 적녹보라적 전환으로서의 페미니즘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급격하게 달라진 사회를 경험하면서 자본주의 위기는 보다 현실화되었고, 젠더-생태주의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 재편에 대한 논의는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당연한 특집의 주제였다. “당연과 물론의 세계를 뒤흔든” 지금이야말로. 그런 맥락에서 고정갑희의 논문은 기획특집에 적확한 글이다. 아쉬운 점은 기획특집 주제를 더욱 풍부하게 다루는 이어지는 논문의 부재이다. 이번 호에 다양하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번 주제는 앞으로 󰡔여/성이론󰡕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이번 호의 논문은 모두 네 편이다. 우선, 홍보람의 「가시성의 경제와 몸 이미지: BL은 어떻게 페미니즘의 ‘문제’가 되었는가」는 BL이라는 ‘문제’적 영역을 대중문화라는 토대, 실천과 저항의 양식인 가시성의 경제를 통해 디지털 공간에서 재부상한 페미니스트 주체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이 부단한 배제와 타자만들기를 통해 가시성의 장에 여성을 투입하고 그렇게 반복된 실천으로 주체의 몸이 되는 과정은 힘겹다. 「한국 드랙킹씬의 탄생과 퀴어 페미니스트 대항공중의 형성」에서 박예지는 한국의 첫 드랙킹 쇼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을 중심으로 한국 드랙킹 문화의 탄생과 공연의 미학, 퀴어 페미니스트 대항공중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 범주를 좀 더 유연하게 구성하고 다른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페미니즘의 가능성을 고민하고 혐오가 아닌 쾌락이 운동을 추동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홍보람과 박예지의 글은 함께 읽었을 때 더 흥미롭다. 전자가 여성없는 BL 콘텐츠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여성주체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자는 퀴어 여성의 몸으로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경험한 남성성을 표현하면서 “여성의 남성성, 남성 신체와는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는 남성성의 가능성”을 다룬다. 두 글을 나란히 싣게 된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백소하의 「트랜스젠더 신체의 정치성: 대상화의 퇴적성으로 살피는 트랜스젠더의 통제적 이미지의 근원」과 문준영의 「가죽을 두른 레즈비언들은 어디로 갔는가 : 미국 레즈비언의 역사 속 1970-1980년대 페미니즘 성전쟁의 의미」, 두 논문은 다른 맥락에서 우리에게 행운이다. 두 글은 편집위원과 지난 호 필자의 추천으로 접하게 된 글이고, 편집위 내부에서 게재방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치열했던 논의 과정은 두 논문을 안내하는 글을 논문란의 말미에 덧붙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매번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기꺼이 힘듦과 즐거움을 오가며 󰡔여/성이론󰡕을 발간하는 의미와, 거창하게는 󰡔여/성이론󰡕의 편집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사족이 오히려 글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지만, 친절하지 않음에 양해를 구한다. 두 논문을 좀 더 세심하게 읽기를 바라는 편집위원들의 마음이 넘쳐서 생긴 일이다. 물론 그 마음이 지나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모두 사족이다. 두 글에 대한 소개는 논문란의 말미에서 확인하기를 바란다. 중복이 될 것 같은 노파심에서다.

여성이론가 사라 아메드를 소개하는 이경란의 「사라 아메드: 행복은 무슨 일을 하는가」는 위의 네 편의 논문과 이어져 있다. 이 글은 우리나라에 번역된 󰡔행복의 약속󰡕, 󰡔페미니스트로 살아가

기󰡕 두 책을 중심으로 사라 아메드 이론의 궤적을 훑어보고 있다. ‘땀이 밴 개념’, ‘불행아카이브’, ‘행복의 지성사’ 등 낯선 단어들이 차이, 퀴어, 다양성, 인종주의와 같은 익숙한 개념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페미니즘 사용설명서에서는 n번방을 다루었다. 유서연은 고통스럽게 읽힐 수밖에 없는 n번방이라는 단어를, 그래서 끝난 범죄로 애써 정리하려는 이들에게 n번방은 새로운 범죄가 아니며, “여러 플랫폼에서 성착취 영상을 제작, 유포, 판매했던 가해자들이 텔레그램이라는 하나의 채널에 모여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그 시작과 현재 진행 상황을 담담하고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

문화/텍스트는 영화 <작은 아씨들>과 유튜브 ‘예지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은아씨들󰡕에서 ‘들’을 사유하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에서 최하영은 “국가/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요소들과 그것을 배반하는 목소리를 함께 지니고 있는” 특수한 시공간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지니는 텍스트로서 󰡔작은 아씨들󰡕을 소환한다. 1917년부터 100년이 넘게 다양한 방식으로 각색되어 온 영화 <작은 아씨들>을 각각의 시대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서 최근 개봉한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 묶이는 다양한 존재들의 이질성”에 주목하고 살펴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퀴어의 편견에 맞서는 유튜브 채널 ‘예지주’에 대한 조민형의 글 「‘예의’의 퍼포먼스와 ‘과함’의 정치성: 예의의 생성과 해체의 장소로서 유튜브 ‘예지주’ 리뷰」도 퀴어 존재의 다양함과 이질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자가 다소 엄숙한 정통적인 방식이라면 후자는 풍자와 해학을 전면에 내세운다. ‘예지주’ 채널의 풍자와 해학은 어쩌면 새로운 퀴어 정치의 가능성을 ‘가시성의 경제’ 속에서 혐오가 아닌 쾌락, 불행이 아닌 행복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주제서평은 󰡔퀴어 이론 산책하기󰡕, 󰡔회사가 사라졌다󰡕 두 권의 책을 다룬다. 「계속해보게 하는 진행형의 사유 : 󰡔퀴어 이론 산책하기󰡕」에서 고윤경은, 이 책은 퀴어 이론 입문서이면서도 퀴어 이론이 무엇인가보다는 퀴어 이론의 힘에 대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자신을 퀴어로 정체화하지 않더라도 “지금 여기의 규범과 불화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우리로 계속해 볼 수 있는 힘”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배상미는 「없어진 회사와 남아있는 부당 노동 행위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 󰡔회사가 사라졌다󰡕」에서 이 책은 노동자보다는 고용주의 피해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폐업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면서 폐업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필자는 폐업을 고용주가 아닌 노동자/여성노동자의 시선에서 고찰하고, 피해를 노동자의 시선에서 규명하고 피해를 야기하는 제도/구조를 바꿔나가려는 용감한 내디딤을 응원한다.

리포트의 첫 번째 글인 탕아의 「아주작은페미니즘학교 탱자를 졸업했습니다」를 읽다보면 탕아와 함께 공부하고 함께 졸업한 느낌이 든다. 귀농 15년차에 자연스럽게 마을의 평화를 깨는 ‘킬조이’가 된 필자가 페미니스트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살아가고 공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행복’해지는 이야기이다. 조은혜의 글 「멸종반란운동, 연결로 해방되리」는 기후-생태위기를 유발한 지금의 모든 체제를 유지하고 수호하는 법과 제도에 비폭력적으로 불복종하는 ‘멸종반란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돌봄재생문화, 자기조직화 시스템, 정치적 행동,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나와 공동체, 사회를 돌보고, 구성원 모두가 권력의 위계화를 경계하며 권한을 가지고, 비폭력적인 그리고 전복적인 정치적 요구를 한다는 것이다. 2등 시민, 취약계층,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주변인들은 서로 닮아있고 연결되어 있으며, 멸종반란운동은 그 작은 만남들이며, 이 만남은 혁명이고, 더 많은 이들과 작은 혁명들을 함께하기를 필자는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박다솔의 「LG가 노조 만든 청소노동자들을 축출하는 법: ‘원직’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난 4월 30일 복직에 합의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온전한 승리는 아니다. 다소 절망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애초에 온전한 승리가 있는가. 노동자의 싸움은 시작과 조건 자체가 불공정하고, 그 때문에 시작된 싸움이 아닌가. 복직은 되었으나 원직 복직은 아니었다. 원직인 LG트윈타워가 아니라 LG마포빌딩의 추가 인력으로 복직되었다. 노동자로서 존엄을 인정받고자하는 이들의 요구는 정년연장, 복직으로 수용된 듯 하지만, ‘추가 고용’이었고, 이른바 정원 외로 복직하였던 것이다. 이는 청소노동자를 전형적으로 ‘잉여’ 인력으로 간주하는 태도이다. 아마도 싸움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여/성이론󰡕 45호는 코로나 4차 대유행의 한가운데서 진행되었다. 2020년 상반기 42호가 발행될 때만 하더라도 45호, 46호가 발행될 때쯤이면 코로나19는 지난 이야기가 되고, 달라져야하는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 공간이 채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나친 낙관론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19 속에 있고, 확진자가 2천명이 넘어섰다는 뉴스에도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지나친 낙관론은 책을 만드는 작업에도 적용되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었고, 시간을 쪼개 약속을 잡고 번잡한 도시를 이동하는 번거로움도 감수하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맨 위층에 모이는 것은 추억과 향수가 아니라 ‘온전한’ 책을 만드는 데 필요조건이었던 것이다. 45호 역시 코로나19의 영향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함께 만드는 작업은 아쉽고 부족하지만 대단하고 즐겁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작업이었다. 이 책과의 만남이 작은 혁명이자, 불행을 읽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행복의 약속’이 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기획특집 자본주의 체제 변환과 젠더

성종계급 모순과 페미니즘: 상품생산-임금노동 중심의 자본주의-가부장체제적 경제의 전환 / 고정갑희

 

논문

가시성의 경제와 몸 이미지: BL은 어떻게 페미니즘의 문제가 되었는가 / 홍보람

한국 드랙킹씬의 탄생과 퀴어 페미니스트 대항공중의 형성 / 박예지

트랜스젠더 신체의 정치성: 대상화의 퇴적성으로 살피는 트랜스젠더의 통제적 이미지의 근원 / 백소하

가죽을 두른 레즈비언들은 어디로 갔는가: 미국 레즈비언의 역사 속 1970-1980년대 페미니즘 성전쟁(Feminist sex wars)의 의미 / 문준영

 

여성이론가

사라 아메드: 행복은 무슨 일을 하는가 / 이경란

 

페미니즘 사용설명서

n번방 / 유서연

 

문화/텍스트

󰡔작은 아씨들󰡕에서 ‘들’을 사유하다 / 최하영

‘예의’의 퍼포먼스와 ‘과함’의 정치성: 예의의 생성과 해체의 장소로서 유튜브 ‘예지주’ 리뷰 / 조민형

 

주제서평

계속 해보게하는 진행형의 사유 󰡔퀴어 이론 산책하기󰡕 / 고윤경

없어진 회사와 남아있는 부당 노동 행위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 󰡔회사가 사라졌다󰡕 / 배상미

 

리포트

아주작은페미니즘학교 탱자를 졸업했습니다 / 탕아

멸종반란운동, 연결로 해방되리 / 조은혜

LG가 노조 만든 청소노동자들을 축출하는 법: ‘원직’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 박다솔

 

 저자 소개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우리는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 문화를 만들며 새로운 이론을 생산하고자 한다. 여성이라는 현재의 정체성을 만든 역사에 균열과 틈새를 내겠다는 의미에서 이 책의 제호 <여>와 <성>사이에 빗금(/)을 그었다. 기존의 여성이란 남성을 상정하지 않고는 자존적일 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여성에 틈새를 내는 여/성의 이론을 만들어보려 한다. 여성이라는 요상한 이름과 성이라는 기이한 이름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것이다. 다시 쓰는 행위는 여성주의적 주체의 역사를 창출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