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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서평

[국민일보] '김숙 현상'은 페미니즘적 사건 (여/성이론 34호)

'김숙 현상'은 페미니즘적 사건

입력 2016-06-07 14:46

“‘김숙’은 2016년 한국의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여성의 신념과 새로운 감성을 대변하고 있는 현상이 되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가 펴내는 국내 대표적인 페미니즘 잡지 ‘여/성이론’이 최근 발행한 여름호에서 개그맨 김숙(41)의 인기를 기존 성역할에 대한 전복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특집을 실었다.

심혜경(천안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씨는 ‘개그/우먼/미디어: 김숙이라는 현상’이라는 글에서 “마흔 넘은 미혼의, 뚱뚱하고, 게걸스럽고, 입이 걸며, 음식을 입에 넣고 큰 소리로 웃어넘기기 일쑤인 김숙은 어쩌다 우리의 빈티지(?) 급스타가 되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김숙은 가부장제 젠더를 역전시키면서 여성성도 남성성도 모두 다 가진, 혹은 이를 교란하는 여성 주도형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인기 원인을 분석했다.

김숙은 지난해부터 최고의 연예인들에게나 부여되는 ‘갓’이 붙은 ‘갓숙’, 지난해 개봉된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의 주인공인 여전사 퓨리오사를 빗댄 ‘퓨리오숙’, 가부장과 대비되는 가모장을 뜻하는 ‘가모장숙’, 여성들의 거센 진출이라는 의미의 ‘걸크러쉬’에서 따온 ‘숙크러쉬’ 등 여러 호칭을 얻으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씨는 JTBC의 가상 결혼 리얼리티 프로그램 ‘님과 함께 2: 최고의 사랑’ 등에서 보여주는 김숙의 말과 행동에 대해 “그간 불합리한 미신과 부당한 사회적 통념으로 억압당해온 여성들의 답답한 속을 뻥 뚫어주는 사이다가 되었다”면서 “기존의 남녀 성역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것인지를 폭로하는 그녀의 젠더 벤딩(gender-bending·성 역할을 바꾸거나 파괴하는 것)과 미러링(mirroring·거울처럼 반사해서 보여주기)에 대중은 열광했다”고 설명했다. 

김숙은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팟캐스트), ‘님과 함께 2’,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 등을 통해 숱한 어록을 양산해 왔다. “남자가 조신하니 살림 좀 해야지”, “갖은 남자 짓(?) 다 하고 있네”, “어디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써?”, “남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가 있어”, “집안에 남자를 잘 들여야 한다더니” 등이 대표적이다.  

심씨는 특히 201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된 예능 프로그램의 ‘남초현상’ 속에서 김숙의 부상에 주목하면서 “김숙은 페미니즘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경박스럽고도 거대한 웃음과 젠더 시스템을 뒤흔드는 말솜씨는 유연한 페미니스트적 전략임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여성학자인 손희정씨도 ‘젠더전과 퓨리오-숙들의 탄생: 2016년, 파퓰러 페미니즘에 대한 소고’라는 글에서 김숙의 활약을 아저씨들이 주도하는 ‘개저씨 엔터테인먼트’ 속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문화전쟁을 수행하는 ‘여전사’, 혹은 ‘여성영웅’으로 조명했다.  

특히 대중문화를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한 장으로 파악하는 ‘파퓰러 페미니즘’이 2010년대 이후 한국에서 부상하는 과정을 탐구하면서 김숙을 파퓰러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정의한다. 손씨는 “그가 미러링하는 것은 정확하게 한국의 가부장제”라며 “‘퓨리오숙’이야말로 보편적 가부장제와 한국의 특수성이 결합된, 이 특수한 가부장제에서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전사들에 대한 징후적 별칭”이라고 분석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