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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여이연/서평

[여성신문] 다시 시작하는 페미니즘을 위하여

페미니스트 임옥희 『젠더 감정 정치』 펴내

글로벌 양극화와 여성혐오의 관계 설명

 

“감정은 다양한 얼굴로 다가온다. 행복한 모습 아래 모호한 슬픔이 감춰져 있을 수도 있다. 수치와 낙인이 자부심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공격성, 우울, 애도, 마조히즘, 혐오, 수치, 자괴감과 같은 온갖 정동들은 지하로 흘러 들어가 서로 뒤섞이게 된다. 이처럼 우연성, 일탈성, 변칙성에 바탕한 감정은 정치경제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 얼굴로 치환되고 전이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젠더정치는 감정의 가장무도회에 집중함으로써 젠더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해석하고 재/배치하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영문학자이자 저술가이며 페미니스트 번역가인 임옥희의 다섯 번째 저서 『젠더 감정 정치』는 글로벌 양극화와 여성혐오의 관계를 비롯한 우리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젠더와 감정 그리고 정치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이 책은 유표적 지시어가 없이 단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당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작금의 세상 읽기이자 이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또 다른 출구에 관한 상상이다.

 

1장 ‘젠더 무의식’은 틈만 있으면 유령처럼 출몰하는 젠더 무의식의 형성과정을 살펴본다. 사회화되기 위해 자기 안에 있는 특정한 욕망을 억압해야 하고, 그로 인해 의식으로 부상하지 못한 잉여는 부착될 곳을 찾아서 떠돌아다닌다. 그런 현상이 특정한 젠더억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젠더 무의식이라 명명한다.

 

“상황에 따라 여성들은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얼굴로 나타난다. 요부/창부, 성녀/마녀, 신여성/페미니스트가 되기도 하고, 귀요미와 된장녀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의 정치적 역량이 강해지면 젠더 무의식은 의식의 저변으로 가라앉지만, 그것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억압되어 있다가 여러 가지 얼굴로 귀환한다. 이런 젠더 무의식은 젠더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곳에서 어김없이 드러난다.”(1장 ‘젠더 무의식’에서)

 

2장에서는 ‘윤리적 폭력으로서 나르시시즘’ ‘폭력과 죽음의 에로시티즘’ ‘폭력의 재배치를 위하여’ 등 여성폭력의 회색지대를 조명했다. 여성적 폭력이 어떻게 신화적, 마법적인 여성적 힘과 권력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3장은 남성의 젠더 무의식을 다뤘다. 여신 메두사는 남성 유일신의 출현으로 괴물로 추락하고, 살모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아이콘이 된다. 그러나 메두사의 억압의 흔적은 남성신의 얼굴 속에서 젠더 무의식으로 귀환한다.

 

4장에서는 ‘프로이트의 마조히즘 경제’ ‘사비나 슈필라인의 생성의 기원으로서 파괴’ ‘제시카 벤자민: 사랑의 굴레로서 마조히즘’ ‘여성적 주이상스’ ‘성적 자기계발로서의 S/M’ 등 마조히즘의 경제성에 관한 수많은 질문과 대면한다. 마조히즘의 경제는 젠더의 정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여성적 주이상스에서 마조히즘의 젠더정치성을 찾아본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 베스트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하드코어 포르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를 분석했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희생이었으므로 그런 희생에서 쾌락을 얻는 것이 소위 여성적 마조히즘이다. 하지만 그레이 시리즈가 보여준 여성의 마조히즘은 평등과 자율이라는 정치성과 도덕적 문제를 삭제해버리고 에로스와 쾌락을 주는 것으로 소화시켜내고 있다. 애정관계의 불안과 불신에 시달리던 여자들은 학대를 쾌락으로 만들어내는 확실한 합의에서 아이러니한 치유와 위안과 자기 합리화의 정당성을 찾아낼 수 있다.”(‘여성의 성적 자기계발로서의 S/M’에서)

 

5장은 수치의 양가성이 젠더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정치화되고 재배치되는지를 다뤘다. 여성적 섹슈얼리티를 수치로 만든 것에 저항하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만들어내는 안젤라 카터,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윤리적 포르노그래피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6장은 추락의 재/의미화를 존 쿳시의 소설 『추락』을 통해 분석한다. 7장은 애도의 정치에 관한 장이다. 애도의 감정은 타자와의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젠더정치로 작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8장은 사랑의 용도에 관한 분석을 담았다. 사랑이 젠더 감정불평등의 기원으로 작동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친밀성을 원하는 여성의 인정욕망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사랑의 물질적 토대와 젠더 무의식적 욕망을 재해석하는 에바 일루즈의 사랑분석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 장인 9장은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라고 선언한 마사 누스바움의 이론을 분석했다. 그가 주장한 페미니즘이 휴머니즘과 만나 어떻게 재활용될 수 있는지 성찰했다.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15년 동안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 세미나를 함께 진행하면서 논의한 내용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래의 약속으로서 페미니즘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감정의 젠더정치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감정은 그 자체에 선악의 개념이 실려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배치하느냐에 따라 윤리적 혹은 비윤리적인 것으로 전환된다”며 “페미니즘이 감정의 젠더정치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홍미은 기자 hme1503@womennews.co.kr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